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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6] 보스톤 역사기행과 호손의 '주홍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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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 기자
기사입력 2018-08-17

▲ 김선옥 칼럼니스트    

 

 

보스톤 역사기행과 호손의 주홍글자


아는 만큼’, ‘관심 가는 만큼다르게 보이는 도시 보스톤. 미 동부 매사추세츠주 수도이자 대서양 동북부 연안에 위치한 여섯 개의 주를 아우르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중심지이다. 자녀 교육에 관심 있는 누군가에게 보스톤은 하버드와 MIT, 사립 명문 고교로 유명한 물가 비싼 교육 도시일테고, 스포츠팬들에겐 미국의 3대 스포츠인 풋볼, 야구, 농구의 대표 구단을 보유한 스포츠 메카일 것이다. 예술 애호가들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버금가는 보스톤 미술관과 브로드웨이 분위기의 극장 지구에 반할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와 문학에 관심 있는 여행자라면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이 시작된 역사적 공간으로서 보스톤에 매력을 느낄 것이다. 17세기 초에 영국 청교도들이 건너와 미국 역사를 시작한 곳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보스톤 차 사건과 렉싱턴 전투, 벙커힐 전투를 통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시작한 곳도 바로 이곳 보스톤이 아니었던가!

 

▲ 현대식 고층 건물과 역사 문화 유적지가 공존하는 보스톤 시내 모습    

 

보스톤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아침은 여유롭게 시작되었다. 깨끗한 시설과 맛있는 아침, 무엇보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여행자들이 뿜어내는 활력과 자유로움이 층별로 멋스럽게 꾸며놓은 편의시설들과 잘 어울리는 ‘Hi Boston' 호스텔, 이곳에 묵는 동안 내내 만족스러웠다. 4인 여성 전용실에 함께 묵으며 잠들기 전 잠시 수다를 떨었던 다인종 룸메이트들은 모두 오늘 떠날거라 했다. 저녁에 돌아오면 또 멤버가 바뀌어 있으리라...

 

나홀로 여행 중에 겪는 짧은 만남과 기약 없는 이별은 이제 너무나 익숙해서 섭섭함도 잠시, 밖으로 나와 눈부신 아침햇살에 안기니 새로운 흥분이 인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보스톤 외곽으로 나가는 대신 작심하고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이 일군 보스톤 초기 역사를 탐색하기로 마음먹었다.

 

▲ 보스톤에서 자유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Hi Boston' 호스텔    

 

먼저 보스톤 시내 중심에 위치한 보스톤 카먼(Boston Common) 공원으로 향한다.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니 1634년에 설립되었다. 종교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이 보스톤 남부에 플리머스 식민지를 세운지 10년이 흐른 1630, 캠브리지대 출신의 지식인들과 중산층 청교도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청교도 이민단이 그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차알스 1세 왕의 허가를 받아 17척의 배로 보스톤에 도착했다.

 

엄격한 칼뱅주의를 받아들인 영국의 신교도들은 영국 국교회의 불완전한 개혁에 반기를 들고 오직 성서와 양심에 따라 깨끗하고 철저하게신을 섬기고자 했던 퓨리턴’(Puritan), 즉 청교도들이었다. 현대 미국의 대표 기독교 교단인 회중파나 장로파 등의 기원이 된 청교도들은 이렇게 보스톤에서 신정일치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보스톤 역사 유적지를 연결하는, 도로 바닥에 붉은 벽돌로 표시된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을 따라 유독 오래된 교회가 많이 서 있는 것도 보스톤이 오랫동안 청교도 공동체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보스톤 시내 바닥에 붉은 벽돌로 표시된 ‘프리덤 트레일’은 주요 역사 유적지들을 연결한다.    

 

에머슨, 소로우 등 미국 초월주의자들과 교류했던 세일럼 출신의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17세기 청교도 사회의 중심지였던 보스톤을 무대로 그 유명한 주홍글자를 집필한다. 이 작품에서 호손은 간통의 대가로 평생 A라는 주홍글자를 가슴에 달고 사는 헤스터라는 강인한 여성과, 나약하고 비겁하지만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딤즈데일 목사를 통해 17세기 청교도 사회의 억압적 현실과 인간성 파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심도 있게 다룬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17세기 보스톤의 역사적 인물과 장소를 사실적 배경으로 하면서도, 젊고 유능한 청교도 목사와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혼자 남게 된 아름다운 여성 사이에서 벌어진 간통 이후의 사건과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탐색한다는 점이다. 특히 엄격한 청교도 율법을 거부하고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여주인공 헤스터의 인고의 저항과 그 과정에서 다른 의미를 생산하는 주홍글자 A의 상징이 무척 흥미롭다.

 

프리덤 트레일이 시작되는 보스톤 카먼에서 파크 스트리트 교회 쪽으로 걷다 보니 헤스터가 가슴에 간통(adultery)을 상징하는 A자를 달고 3개월된 아기를 안은 채 형틀이 놓인 연단에 올라 수치를 당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물론 교회 발코니에 서서 간통 상대방을 심문하던 윌슨 목사는 실제 인물로서 그가 부임했던 보스톤 최초의 교회는 찰스타운에 있었지만 이곳을 지나면서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아마 작품 속에도 등장하는 히빈스 마녀가 1656년에 이곳 보스톤 카먼에서 교수형에 처해졌고, 공원 옆에 서 있는 오래된 교회와 그 옆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주홍글자서두에 묘사된 분위기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리라.

 

▲ 보스톤 카먼 공원과 1809년에 세워진 파크 스트리트 교회    

 

이곳에서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실제로 주홍글자에서 종종 언급되는 킹스 채플(King's Chapel)과 그 옆에 조성된 보스톤 최초의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인 딤즈데일 목사가 기거했던 집이 이 킹스 채플 자리에 있었다고 언급되고, 그 옆에 위치한 공동묘지는 주요 장면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간통죄를 숨기고 처절하게 고통을 겪다 마지막 순간에 죄를 고백하고 죽은 딤즈데일 목사와 그보다 오래 살아남아 고통을 겪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자 역할을 했던 헤스터가 죽어 묻히는 곳도 이 묘지이기에 그곳을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물론 두 인물은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공동묘지의 묘비에서 그들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청교도 이민단을 지휘했던 존 윈스롭을 비롯하여 작품 속에도 등장하는 보스톤 초기 지도자들 상당수가 이곳에 잠들어 있어서 특별한 느낌을 전해준다.

 

▲ 1630년에 설립된 킹스 채플 공동묘지. 킹스 채플은 이곳과 별개로 18세기에 세워진 교회이다.    

 

주홍글자의 배경으로 설정된 17세기 공동묘지 안을 거닐면서 비바람에 풍화된 낡은 비석들을 보고 있노라니 작품 속의 한 장면처럼 구부정한 어깨로 무덤가에서 약초를 캐는 복수의 화신 로저 칠링워쓰가 이곳 어디엔가 쭈그리고 앉아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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