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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문학과 나홀로 세계여행7] 보스턴 역사기행2와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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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 기자
기사입력 2018-09-14

보스톤 역사기행2와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 김선옥 원광대 교수    


호손의 상상력이 빚어낸 19세기 고전 주홍글자의 주인공들이 실제 역사적 인물과 함께 영면하는 보스턴 킹스 채플 공동묘지. 그곳에 가시거든 헤스터와 딤즈데일, 그리고 죄와 사랑 속에 태어난 그들의 어린 딸 펄을 기억하시길! 음산한 공동묘지에서도 야생의 홍조처럼 묘비들 사이에서 깡충거리던 그 어린 요정은 사회의 율법을 어기고 사랑을 나눈 어미와 아비를 벌하는 고통이자 자연이 베푼 축복이고 위안이었다.

 

문학적 상상 속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공동묘지를 가득 채운 천여 개의 묘비명에 적힌 그 어떤 이름들보다 두드러진다. 그들이 상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묘지를 거니는 동안 내 의식은 자꾸만 묘비명에서 그들의 이름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 작가가 창조하는 문학적 세계는 때때로 그렇게 강력하고 리얼하게 누군가의 감성을 지배하고 그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킹스 채플 공동묘지에서 나와 도로 바닥에 표시된 프리덤 트레일을 따라 현대의 고층빌딩 사이에서 엄숙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식민지 시절 역사 유적지들을 하나씩 방문해 본다. 역사기행을 떠나기 전 구글에서 미리 장소에 얽힌 사연들을 읽어둔 탓에 유적지에 도착하면 상상력은 즉각 과거의 사건과 사람들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보스턴 학살 사건의 현장, ‘보스턴 차 사건을 준비하며 대표들이 집회를 가졌던 옛 청교도 교회인 ‘Old South Meeting House’, 발코니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Old State House’를 지나 독립혁명의 지도자들이 열띤 연설로 시민들의 가슴에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불 지폈던 ‘Faneuil Hall’에 이르렀다. 사무엘 애덤스의 동상 옆에 서니 그의 연설에 열광하는 군중들의 결의와 함성이 귓전에서 울리는 듯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보스턴의 관광 명소 퀸시 마켓에서 놀이꾼들이 벌이는 쇼에 화답하는 관광객들의 외침이 내 머릿속 상상과 뒤섞여 현장감을 전해준 탓이리라.

 

▲ 사무엘 애덤스 동상과 ‘Faneuil Hall’. 바로 옆에 위치한 퀸시 마켓에서는 매일 색다른 공연이 펼쳐진다. 퀸시마켓 앞 도로 바닥에 붉은 벽돌로 표시된 프리덤 트레일이 보인다.    

 

퀸시 마켓 앞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쇼를 구경하고 현란한 음식점과 기념품점이 즐비한 마켓 안으로 들어가 보스턴 명물 랍스터 롤을 점심으로 먹었다. 삶은 랍스터 살을 발라 소스에 버무려 빵에 넣어 먹는 롤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고 프리덤 트레일을 완주할 힘을 주었다. 도로 바닥에 표시된 붉은 벽돌만 따라가면 되니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다.

 

▲ 보스톤의 대표 음식인 랍스터롤과 클램차우더 수프. 퀸시마켓에서 세트로 먹을 수 있다.    

 

유적지들을 방문하고,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시며, 프리덤 트레일의 종착지인 벙커힐 전투 기념관까지 걸어가니 오후 세시, 근처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와 롱펠로우의 집을 방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벙커힐 기념관에서 택시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는 고풍스런 건물과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아름다운 캠퍼스를 여행자들에게 활짝 열어 놓았다.

 

1630년 대규모 청교도 이민단을 지휘했던 영국 캠브리지 출신의 지식인들은 찰스타운에 정착지를 건설한 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한 존 하버드(John Harvard) 목사의 이름을 따서 이 대학을 세웠다. 주변 지역은 고국에 두고 온 모교의 이름을 따서 캠브리지라 명명했다. 넓게는 보스턴 권역에 속해 있지만 찰스 강을 두고 보스턴과 분리된 소도시 캠브리지 시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 하버드 대학교의 중앙 잔디밭. 여행자들과 투어객들로 붐비는 관광 명소이다.  

 

 

가이드가 이끄는 투어 객 무리에 섞여 캠퍼스 명소들을 둘러본 뒤 하버드 교수로 재직하면서 당대 최고의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19세기 미국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의 집으로 향했다. 하버드 캠퍼스로부터 걸어서 10여분, 그의 집은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독립혁명군 사령부로 쓰였던 역사적 유적지이기도 하다. 넓은 잔디밭을 거느린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조지안 양식의 2층 집은 겉에서 한 눈에 보아도 10개가 넘는 방이 딸린 럭셔리한 집이었다.

 

시인이 어떻게 저렇게 큰 집에서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구글을 검색해보니 롱펠로우가 하버드 재직 중에 2층에 있는 방을 얻어 세 들어 살다 두 번째 부인이었던 프랜시스 애플턴(Frances Appleton)과 결혼하면서 그의 장인으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았단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첫 번째 아내가 결혼 4년 만에 유산 후유증으로 생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비탄에 빠져있던 롱펠로우는 몇 년 뒤 스위스에서 만난 애플턴에 반해 구혼하지만 차갑게 거절당한다. 그러나 7년 간 한결같이 기다리며 구혼한 끝에 마침내 결혼에 성공하고, 이 집은 인내와 기다림으로 사랑을 쟁취한 그에게 주어진 선물이었을 것이다.

 

▲ 롱펠로우가 50년 이상 기거한 집. 독립전쟁 기간에는 조지 워싱턴 군 사령부로 쓰였다.    

 

그러나 부와 명예와 사랑을 모두 얻은 그의 삶도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여섯 아이들을 두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아내는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다 치마에 옮겨 붙은 불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어 다음 날 세상을 떠났고, 아내를 구하기 위해 불길에 뛰어들었던 롱펠로우는 그의 얼굴에 남긴 화상 자국보다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롱펠로우는 두 아내의 죽음과 관련하여 단지 두 편의 시를 쓴 것 말고는 자신의 개인사를 시에 담지 않았다. 대부분 힘차고 낙천적이고 교훈적이기까지 한 그의 대표 시들을 읽으면서 힘겨웠던 그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제 롱펠로우의 삶에 닥쳤던 가혹한 시련을 알게 나니 그의 시들이 품고 있는 긍정과 낙천성이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려 했던 결연한 의지처럼 느껴졌다.

 

▲ 롱펠로우의 트레이트 마크가 된 긴 수염은 입 주위의 화상 자국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사진제공=구글)    

 

중학교 시절 다이어리 노트에 예쁜 그림과 함께 베껴 적었던 그의 인생찬가’(A Psalm of Life)는 내게 얼마나 가슴 벅찬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켰던가! 물론 이 시는 이제 50대에 들어선 내 심장을 더 이상 강타하지는 않는다. 19세기에 최고의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롱펠로우의 시들은 동시대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에드가 앨런 포의 악평 이래 많은 문학 비평가들에게 대중적 인기에 부합하거나 심지어는 어린이용시라며 조롱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평가들로부터 외면당했다한들 어떠하리. 모든 사람이 시적 기교와 예술성이 뛰어난 시들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의 시는 쉽고, 음악성이 풍부하고, 삶의 긍정과 낙천성, 그리고 인생길을 안내하는 예지와 교훈이 담겨 있다. ‘인생찬가’, ‘화살과 노래’, ‘밤의 찬미등 그의 대표 시들이 여전히 많은 보통 사람들의 개인 블로그에서 소개되고 암송되는 이유일 터다.

 

▲ 집 뒤편에 있는 롱펠로우가 직접 가꾸었다는 정원.    

 

롱펠로우가 가꾼 정원에 앉아 그토록 사랑하던 두 아내를 비극적으로 떠나보내고 그가 감내했을 고통을 떠올리며 인생찬가를 다시 읽어보니 오랫동안 조용했던 내 심장이 그 옛날처럼 격하게 반응했다. 서두 부분만 여기에 옮겨보련다. 그가 노래한대로 무덤이 우리 삶의 종착지는 결코 아니다!!

 

슬픈 가락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다만 허왕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며,

만물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기에.

 

Tell me not, in mournful numbers,

Life is but an empty dream!

For the soul is dead that slumbers,

And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인생은 실재! 인생은 진지한 것!

무덤이 그 종착지는 아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것은 영혼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Life is real! Life is earnest!

And the grave is not its goal;

Dust thou art, to dust returnest,

Was not spoken of the soul.

 

 

 

김선옥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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